예술인들의 영화관람(우)과 스크린 뒤에서 운동기구를 타던 어린아이(좌)

 

지난 늦여름의 어느 날 밤, 저희 동네 놀이터에서 작은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놀이터에 사람들이 북적이길래 가보니 맞은편 갤러리에서 천막을 설치하여 간이 영화관을 만들었더군요. 주민들을 위한 상영회 같은 것은 아니고, 예술인들끼리 조촐하게 모여 독립 영화를 관람하는 듯했습니다. 약속도 없고 심심하던 참에 잠시 보고 갈까 해서 구석으로 가보니 작은 테이블에 치킨과 맥주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순간 치킨에 눈이 먼 저는 누군지 모를 기획자 분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연달아 치킨 세 조각과 맥주 두 컵을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으니 영화도 성실하게 봐야 할 것 같아 노력해 보았지만 영화의 내용은 마치 예술인들만 봐!라고 하는 듯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나저나 이 시간대에 할머니에게 배식을 받는 녀석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갑자기 많아진 사람 손님들 때문에 다들 숨어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져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숨어있기는커녕 영화관람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음.. 그런 저런 내용인 거다냥?"

 

 

 

 

 

헤르미온느의 요술 가방처럼 차 밑에서 계속 나오고 있는 고양이들입니다.

 

"사실 나는 영화보다 치킨에 더 지대한 관심이 있다냥"

 

 

 

 

 

"나도 나도!! 우리에게도 치킨을 달라냥!!"

 

노랑둥이의 자식으로 보이는 아깽이도 합세를 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녀석들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했는지

영화제의 치킨은 포기하고 할머니의 집을 향해 해바라기를 해봅니다.

 

 

 

 

 

"할머니 영화 다 봤어요!! 밥 주세요!!"

 

눈을 희번덕거리며 밥을 기다리고 있는 먹칠이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도 모르니 숨어서 기다려라, 말을 해보아도

배가 고픈 녀석의 귀에 집사의 말은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동네의 한 편에서는 예술인들의 영화 관람과 함께

할머니들의 치킨 시식회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예술인들에게 치킨이 짜!! 하고 외치시던 할머니들)

간이 스크린의 뒤편엔 열심히 운동기구를 타던 꼬마 아이가,

놀이터 앞에는 저녁밥을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술인과 할머니, 그리고 고양이가 있는 마을에서

그렇게 평범한 어느 늦여름 밤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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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09.13 17:46 신고

    라흐님이 찍으신 고양이들을 보니 예쁜 다큐멘터리 한 편 본 것 같네요~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니 동네 고양이들도 다 모이는군요ㅋㅋㅋ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09.14 10: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차 밑에서 고양이들이 계속 나와요 ㅋㅋ
      치킨 냄새가 솔솔나서 다 나온것 같은데.. 사실 이 녀석들의 메뉴는 따로 있어요
      할머니가 맨날 간하지 않은 닭고기를 던져주시거든요^^ ㅎㅎ

  2.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3.09.13 21:59 신고

    넘 이쁜 풍경이에요~~~ ^^ 라흐님 동네 참 좋은 동네 같아요~~ㅎ
    제 마음까지 따뜻해져요~~ 정말 잘 봤어요~~~ ^^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09.14 10: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소금님 감사합니다.^^
      사실 블로그를 하면서 동네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피하려는 편이었어요. 아무래도 민감한 길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이 날 여러 사람들과 길고양이가 공존하는 느낌을 받아서 한 번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이런 사람과 저런 사람 이런 고양이 저런 고양이가 다 그러려니 하고 공존하며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3. Favicon of https://lincat.tistory.com 적묘
    2013.09.17 21:57 신고

    아흐.....

    한국 칙힌이 먹고파용..
    저 고냥씨들 보다 더 간절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어제 닭고기를 점심으로 먹었는데
    역시 남미 음식은 짜구나 하고 감탄..ㅠㅠ
    돈 아까버서 다 먹었어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09.20 21:3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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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해외에 나가면 치킨이 너무 먹고싶다고 하더라구요.
      한마리 슝 보내드리고 싶어지네요.^^
      그러고 보면 치킨은 남녀노소 국적불문 사람과 동물 누구에게나 땡기는 마력의 음식이로군요.ㅎㅎ

  4. Favicon of https://hansik07.tistory.com Hansik's Drink
    2013.09.21 16:17 신고

    잘 보고 갑니다 ^^
    의미있는 주말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