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낮잠자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냥.. 흙도 포근하니 좋은 냄새가 난다냥"

 

평화로운 오후, 놀이터 구석에서 숙면을 취하고 있던 삼색이.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꾸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지 급기야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아웅.. 낮잠 자는데 대체 무슨 소리냥"

 

 

 

 

 

그것은 다름 아닌 동네 꼬마 아이. 아까부터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돌면서 삼색이에게 관심이라도 있는 듯 눈여겨보더니, 이내 자전거는 내팽개치고 녀석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안녕 고양이야~ 나는 아무개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야?"

"...."

 

당연히 고양이는 말이 없고.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어"

 

꼬마 아이는 욕심내지 않는 듯 천천히 삼색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행여나 삼색이와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녀석을 놀랠까 봐 지켜보니, 꼬마 아이 역시 녀석이 놀랄까 봐 잔뜩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걸고 있었다. 키를 낮추어 눈높이를 맞추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경계했던 내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삼색이는 너는 뭐냥. 하는 표정으로 잠에서 덜 깬 듯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 이래서 인기 많은 고양이는 괴롭다니까. 왠지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나와 몰래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덧 다른 아이들도 주변에 모이기 시작하고, 그들 사이에는 어느샌가 열띈 토론이 시작되었다. 무슨 내용인가 언뜻 들어보니 저 고양이와 친해졌으면 좋겠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갈까 봐 무서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이 삼색이와 친해질 용기가 없는 가장 큰 부분은 아마도 '줄 간식이 없다'는 것인듯했다.

 

 

 

 

 "고양이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자고 있어서 놀란단 말이야." 하고 친구에게 설명하던 꼬마 아이.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참 귀여운 아이들이다 싶어 그 광경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좀 더 친화력이 있는 인간이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불행히도 나는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사람,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인지라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들 중 가장 작은 아이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멀리서 나를 보더니 자박자박 걸어와 내 옆으로 앉았다. 나는 얼음이 되어 가만히 앉아있고, 아이도 막상 옆으로 왔지만 부끄러운지 가만히 앉아있고, 그걸 보던 언니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당차게 걸어와 우리의 곁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엉겁결에 동네 아이들에 둘러싸여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꼬마 아이가 내게 말했다.

"카메라.. 감독님이세요?"

아 아니.. 그런 거 아닌데.^^;

"그런데 왜 카메라를 들고 계세요?"

나는 그냥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아아.. 여행하시고 그런 거예요?"

응 그런 것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해.^^

"우와!! 그렇구나 저도 고양이 좋아해요!!"

 

고양이 얘기가 나오자 꼬마 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부끄러워했던 동생도 한결 긴장이 풀린 듯 방긋 웃더니 자리를 좁혀 옆에 꼭 붙어앉았다.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오래전 강아지를 키웠는데 부모님이 시골로 보내셨고, 그 뒤로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네의 고양이들도 예뻐서 놀 때마다 보곤 하는데 밥을 주지 못해서인지 친한 고양이는 없다고 했다. "저도 고양이 밥을 주고 싶어요" 하길래 그런데 못 주니? 하고 물으니 집에.. 고양이 밥이 없어요.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밥 안 줘도 돼. 나중에 이다음에 커서 주면 되지. 하자 꼬마 아이는 그럼 고양이 밥도 많이 갖고 계세요? 물었다. 그럼~ 이 가방에 이~만큼 들어있지! 하며 매고 있던 등가방을 가리키자 우아아아~ 부럽다는 듯 환호성을 질렀다. 살다 보니 고양이 사료 많다고 부러움을 살 날도 오는구나. 허허. 그럼 너도 고양이한테 간식을 줘볼래? 하고 소시지를 하나 까서 아이에게 쥐여주었다. 그러자 신이 나는 듯 활짝 웃던 꼬마 아이.

 

 

 

 

 

아이들과 상의하에 흙이 묻지 않을 풀 위에 소시지를 올려주었다.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잠만 자던 삼색이가 그것을 보자 잠자는 게 대수냥, 하며 소시지를 물고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 저 구석에도 소시지 두고 오자. 이따가 오면 먹을지도 몰라." 소시지를 줄 새로운 장소를 찾는 큰아이와 간식 대신 줄 선물인 양 분홍색 플라스틱 코끼리를 들고 가던 작은 아이.

 

 

 

 

 

소시지를 주고 남은 껍질을 주섬주섬 모아 내 가디건의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자, 제가 버릴게요 하며 큰아이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 아니야, 내가 가다가 버리면 돼. 손에 있으면 냄새 배니까 나 줘. 하는데 괜히 마음이 울컥. 내가 그동안 아이들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었나? 툭하면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고 예의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인데. 이 날 만났던 아이들은 마치 너가 잘못 생각했어! 하는 것처럼 내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고 고양이가 좋아서 밥을 주고 싶지만 집에 고양이 밥이 없어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한다는 아이들. 큰아이가 이런 것도 물어봤었다. 저기 윗동네 구석에도 고양이 밥이 있어요. 왜 구석에만 있을까요? 하고. 그건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래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심히 주는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아아.. 하고 웃으며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수긍했다.

 

 

 

 

 

너희가 다 자라서 나만큼 자랄쯤에는, 정말 고양이에게 줄 밥만 있으면 고양이에게 밥을 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너희는 그때까지 지금처럼 예쁘게 자라야 해! 아마 십 년 전보다 지금이 더 나아졌듯이, 앞으로는 더 좋아질 거라는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희망적인 기분마저 들었다. 시간을 오래 지체한 것 같아 다음에 또 보자, 하며 가방을 챙기자 계속 뒷짐을 지며 쭈뼛거리던 작은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아까 고양이에게 주려고 했던 분홍색 플라스틱 코끼리였다. 이 예쁜 걸 나 주면 어떡해 너가 갖고 있어. 하자 서운하다는 듯 그러면 이거라도.. 하며 작고 깨끗한 돌멩이를 주었다.

 

 

 

 

 

누가 보기엔 우스운 선물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돌멩이는 얼룩이가 주었던 끈 선물과 함께 지금 내 책상 위를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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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철수와 경철이
    2013.10.05 09:42

    이런 동화, 힐링이 됩니다.
    삼색 녀석이 아이들 앞에서 소시지를 잡숴 주셨더라면 더 완벽 했을텐데
    도무지 협조가 안 되는 괭시키들!
    아이들 기억 속에 라흐님이 어떤 그림으로 남았을까
    생각만 해도 저릿합니다

    저는 차단인가요~--;;
    차단 된 이름을 사용한다고 댓글을 못 쓴대요

  2.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3.10.05 14:15 신고

    아웅~~~ 아이들이 넘 이쁘네요~~~ 작은 동물이라고 막 대하지 않고 조심조심 하는 모습이 왠지 가정교육 잘 받은 아이들 같아요~ㅎ
    정말 한 편의 동화같아요~~! 라흐님 나중에 책내셔도 될 듯~~ ^^
    삼색이가 정말 조금만 협조했음 완전 영화같은 스토리인데요~~ㅋㅋㅋ 저도 아쉽네요~ㅎ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0.06 17: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네 저도 놀랐어요. 그동안 애들이라면 무조건 싫다고 기피했던 제가 부끄러워지더군요. 삼색이는 소시지만 잔뜩 물고 홀연히 사라지더니 나타나지 않더라구요. 애들이 엄청 실망하는 눈치였어요..ㅋㅋ 다음에 만나면 간식을 더 쥐여주고 가야겠어요.^^

  3. 몽실언니
    2013.10.07 11:05

    아고~ 아이들이 너무너무 이뻐요~^^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도 이쁘고~ ^___^

  4.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10.07 23:15 신고

    애들이 참 예쁘네요~ 눈이 참 맑아요~
    저 고운 마음 그대로 갖고 자라길...!
    이렇게 찌든 저도 고양이가 제가 준 거 먹어주면 뿌듯하고 고맙고 신기하고 그런데 애들은 더하겠죠?
    삼색이랑 저 애들이 좀더 친해졌음 좋겠네요~

  5. Favicon of https://daumview.tistory.com Daumview
    2013.10.11 13:30 신고

    안녕하세요. Daum view입니다.
    축하합니다. 2013년 10월 2주 view어워드 '이 주의 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며, view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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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으아아..
    2014.12.01 03:26

    마음이일렁일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