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이에게 늘 고마운 것은, 이 녀석이 저를 '믿어도 되는 인간'으로 인식을 하면서도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제 영역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경계심이란 자고로 길고양이에게 아무리 지나쳐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얼룩이를 추종하는 그림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 그냥 '아깽이'라고 부르던 녀석인데요,

야옹이가 낳은 새끼들이기 때문에 녀석들은 친자매인 셈입니다.

그런데 야옹이가 이 영역을 얼룩이에게 물려주고 다른 곳에서 아깽이를 낳았기 때문에

얼룩이는 이 녀석을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불청객'쯤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인지 몇 달쯤은 아깽이가 자기의 영역으로 올 때마다 사납게 화를 내며 쫓아내곤 했습니다.

 

 

 

 

 

아깽이를 처음 만났던 건 지난 유월, 먹이 공급도 되지 않는 지역에서 녀석은 휴지를 씹어먹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치는 거겠지 생각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뜯어먹은 듯한 흔적이 있더군요.

그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기도 했고, 사실 길고양이를 챙긴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루아침에 고양이별로 돌아간 녀석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더 이상 마음을 주지 말자, 하며 간간이 보이던 녀석의 이름조차 지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냥 매일 내놓는 밥이나 찾아와서 먹고 가길, 하고 조용히 빌었죠.

그런데 얼마 살지 못할 줄 알았던 녀석은 어느샌가 쑥쑥 자라 이제는 꽤 의젓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얼룩이도 이제 쫓아내기를 포기한 건지 함께 자주 보이고는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아깽이'란 이름을 버리고 '누렁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구수하니 멍멍이가 연상되는 이름이지만, 조금 촌스러워야 왠지 씩씩하게 오래 살 것 같아서요.

 

 

 

 

 

그런 누렁이에게, 아마도 얼룩이는 닮고 싶은 '롤모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기를 사납게 몰아내도 곁에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얼룩이가 하는 행동은 꼭 한 번씩 따라 해 보고요.

자기처럼 어릴 적에 유약했지만, 어느덧 이 동네에서 제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성묘이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오늘도 누렁이는 얼룩이에게 다가갑니다.

 

"둥!"

 

 

 

 

 

"두둥!"

 

익숙한 듯 스토커 기질을 발휘하는 누렁이입니다.

 

 

 

 

 

얼룩이는 사실 누렁이가 마냥 귀찮기만 한 것 같습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오래 한데다 무리 생활을 하는 것이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낮에 얼룩이를 보러 나오면 신이 나서 냥냥 거리며 따라오곤 하는데

누렁이가 따라왔던 이 날은 왠지 시종일관 울적한 표정이었습니다.

 

 

 

 

 

"아오 귀찮게 저걸 그냥.."

 

얼룩이는 귀찮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무섭게 쫓아내지는 않는 게 큰 변화입니다.

 

 

 

 

 

"나도 같이 놀면 안되냐옹..?"

 

얼룩이 언니가 무섭지만 든든하고

매일 밥을 주고 가는 인간도 두렵지만 친해지고 싶은 누렁이.

 

 

 

 

 

"이 원치 않는 언니 노릇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냥.."

 

제 몸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저를 좋다고 따라다니는 누렁이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한 얼룩이입니다.

 

 

 

 

<관련 글>

 

2013/10/01 - [길고양이] 야옹이에게 '길고양이 교육'을 받고 있는 아깽이

 

2013/08/23 - [길고양이] 제 동생인 줄도 모르고.. / 길고양이의 영역 확보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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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lincat.tistory.com 적묘
    2013.10.31 12:03 신고

    아유~ 저 고추 화분 사이에 자연스러운 고양이들이라니...

    누렁이든 얼룩이든 흰둥이든 다들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가을 겨울 보내고
    내년에도 건강히 라흐님에게 간식도 얻어먹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01 09:57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그러게요^^ 요즘 겨울 대비하라고 밥이랑 간식 양을 늘렸는데 이 녀석들 엄청 먹어요 ㅋㅋ 다른 사람이 주는 사료에 제가 밤에 주는 사료, 통조림까지 싹싹 다 먹어치워 놓더라구요. 올해도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3.10.31 19:03 신고

    얼룩이도 누렁이가 동생인 걸 알까요~? ㅎㅎ 쫓아다니는 누렁이도 싫지만 짜증은 안 내는 얼룩이도 넘 귀여워요~~ㅋㅋㅋ
    누렁이랑 얼룩이랑 같이 따스한 겨울 보냈음 좋겠어요~~ 붙어 있음 아무래도 덜 춥지 않을까요?
    혹시 누렁이는 엄마가 보낸 거 아닐까요~? 언니한테 가거라~ 하믄서~~ㅋㅋㅋ
    마지막 사진 얼룩이 앞발 귀여워 미쵸~!!! >ㅂ<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01 09:56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전에는 막 학을 떼면서 도망다니던데요 ㅋㅋ 귀찮긴 되게 귀찮은가봐요. 그래도 예전처럼 하악질을 하거나 쫓아내지는 않아서 다행이죠? ㅎㅎ 한곳에 있어도 먹이 걱정은 없으니까 추운 겨울동안만이라도 서로 의지하면서 따뜻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정말 어미 야옹이가 누렁이에게 언니한테 가면 안전하니까 거기 가서 살아라! 한건지도 모르겠네요.^^

  3.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11.01 11:54 신고

    누렁이 순한 표정이 정말 귀엽네요ㅠ 전 저런 동생 있으면 정말 잘해줄 자신 있는데!
    날도 추워지는데 빨리 친해져서 꼭 붙어있게되면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02 11:20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비오는 오늘도 주차장 밑에서 같이 붙어있었다고 하네요.^^ ㅋㅋ 둘은 어떨지 모르지만 인간이 보기엔 역시 혼자보단 둘이 따뜻하고 좋아 보여요.

  4. 으아아..
    2014.12.01 03:33

    지난 포스팅의 막내가 누렁이인가요? 귀여운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