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얼룩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녀석들이야 워낙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 하루 이틀쯤 안 보인다고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아빠 근엄이는 수컷이라 활동 영역이 넓어 다른 곳에서 밥을 먹거나 잠자는 모습을 여러 번 봤었고, 엄마 야옹이는 언젠가부터 영역을 아래쪽으로 옮겨 배가 고플 때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 집 앞에 터를 잡고 낮이나 밤이나 있는 고정 멤버는 결국 얼룩이와 누렁이. 농담 삼아 '흔묘'라고 부를 만큼 언제 나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녀석들이다.

 

 

 

 

 

얼룩이를 마지막으로 본건 며칠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 달라고 우는 녀석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서둘러 사료와 캔을 섞어 밖에 나왔다. 날은 이미 너무 쌀쌀해져있었고, 얼룩아 춥지 않니 물으니 녀석은 냐앙, 냐앙 하며 괜찮다는 듯 벽에 부비부비를 했다. 어서 먹어 하며 밥을 내놓자 오도독 오도독 사료를 먹는데, 그때 누렁이가 뒤에서 같이 먹자며 달려들었다. 저 녀석 또 얼룩이에게 혼나겠구만,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얼룩이가 먹던 것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 누렁이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저 먼저 먹겠다고 누렁이를 구박하거나 그것마저 귀찮은 날이면 함께 고개를 박고 먹곤 했는데, 누렁이에게 양보를 하는 건지 그날은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평소에는 자기네끼리 어떻게 먹든 밥만 뿌려주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녀석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집요하게 밥그릇을 들고 얼룩이에게 밥을 먹으라며 쫓아다녔다. 녀석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계속 벽에 부비부비를 하며 냐앙, 냐앙 울기만 했다. 결국 나중에 꼭 먹어 하며 밥그릇을 구석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길고양이야 길고양이 나름의 삶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라도 녀석을 가둬서는 안된다. 매일 녀석을 지켜보는 나라도 결국 해줄 수 있는 일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뿐. 척박한 환경에서 제 몸 하나를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버텨내며 살아가는 녀석이기 때문에, 그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밥을 먹으러 나와주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얼룩이는 어디로 갔을까. 추운 겨울을 대비하러 피난처를 마련하느라 잠시 바쁜 걸까. 아니면 호시탐탐 자신을 따라 하고 영역을 탐내는 누렁이에게 이곳을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간 걸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역을 옮긴 적이 없는 녀석인데. 1년 반 동안 살면서 녀석이 3일 이상 보이지 않았던 건 tnr을 하러 갔을 때뿐이었다. 지난여름 폭우가 내리던 날에도 인근 주차장에서 얼룩아 하고 부르자 젖은 몰골로 나타나 반갑다며 울던 녀석이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자신을 비추며 기다리고 있던 얼룩이. 너가 어느 날 그곳에 없으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늘 하곤 했었다. 길고양이인 녀석이니 늘 마음을 담담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잘 되질 않았다. 그런 걱정 따위 무슨 소용이냥, 하는 것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줬기 때문에. 그런 녀석이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니 마음을 둘 길이 없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 없었느냐는 듯 그렇게 가로등 밑에 나타나주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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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katzen.tistory.com 고양이두마리
    2013.11.14 15:57 신고

    올 거예요
    홀연히, 인간 속 탄 거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멀쩡히 나타날 거예요.
    며칠만 더 기다려보자구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15 14:57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고양이두마리님 말씀처럼 너 속 탄거 내 알바 아니다냥~ 하며 나타났네요. 며칠동안 나름 지옥이었는데 냥냥거리면서 따라다니는 거 보니까 기쁘기도 하고 허망해요.ㅠㅠ 앞으로 추워지면 숨어있느라 못볼날도 더 많을텐데 정말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어요.

  2. Favicon of https://rurbanlife.com 금선
    2013.11.14 19:06 신고

    1~2주 정도 가끔 자리 비우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너무 마음쓰시지 마세요. 라흐님.
    아직도 호프집 지날때마다 울컥하는데..라흐님도 그런마음이시겠죠.. 코끝이 찡해옵니다. ㅠㅠ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15 15: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저도 호프냥이 가끔씩 생각나곤 하는데.. 정말 한번 마음 줬던 녀석은 잊히지 않더라구요. 용감하고 정의로웠던 녀석이니 아마 고양이별에서도 행복하게 잘 있겠죠..^^ 에휴, 얼룩이 이놈은 궁둥이 좀 때려주고 싶네요 어디를 쏘다니다가 온건지..ㅎㅎ

  3. Favicon of https://catilda.tistory.com ­틸다
    2013.11.14 19:11 신고

    어떤 마음이실지 충분히 이해가 돼요.
    중성화가 되지 않았다면 발정이라도 나서 쏘다니고 다니나 하겠지만 걱정이 되긴 되네요.
    며칠 내로 꼭 돌아왔다는 소식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15 15: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제말이요!! ㅎㅎ 중성화된 놈이라 수컷찾아 갔을리도 없고.. 워낙 이곳에만 붙어있었던 탓에 며칠 못봤는데도 되게 걱정되더라구요. 그래도 다행이죠.^^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4. 길냥길드
    2013.11.14 21:39

    얼룩이 컴백 플리즈!!

  5.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3.11.14 21:56 신고

    ㅠㅠ 어디 간 걸까요.. 우리 얼룩이....
    제목보고 넘 깜짝 놀랐어요... 여태 그런 적이 없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나쁜 생각을 안 하려구요... ㅜㅜ
    얼룩이가 꼭 나타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나타날 거라 믿어요..
    라흐님 힘내세요~! 짠 하고 나타날거에요~~!!
    얼룩아~~ 돌아올거지~~~ 돌아와야해~~ 제발...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15 15: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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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오래 걱정시키지않고 나타나서 다행이죠?^^ 이제 겨울이라 숨어지내는 시간도 길어질테니까. 저도 이제 마음 좀 단단히 먹고 지내려구요. 고맙습니다.^^

  6.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11.14 23:09 신고

    늘 보이다 안 보이면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데;ㅁ;
    이럴 땐 고양이랑 말이라도 통해서 가면 간다 인사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걱정했냐? 쓸데없이... 하고 빨리 태연하게 나타나주길!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1.15 15:06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무슨 신호라도 좀 보냈으면 좋겠어요. 발바닥 도장이라도 좀 찍어주고 갈것이지.. 기다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한지요..ㅠㅠ

  7. 냥이맘
    2013.11.15 01:06

    혹시 삼색이니 분명 여아라..약간 살찐듯해도 아가를 가졌을수도 있던데요..혹 다시 나타나면 충분히먹이고 뒤따라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