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집사의 일기'라는 블로그명에 걸맞게도, 지난 일 년 동안 제가 써온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길고양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일 년 전만 해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는지조차 알지 못할 만큼 고양이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인데. 대체 무엇이 이렇게 이끌었을까요? 지나가던 길고양이가 나를 좀 봐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변에 가까운 누군가가 길고양이를 케어하거나 동물 문제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길고양이의 늪에 빠져버린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혹시 녀석들이 동네 놀이터에 모여서 회의를 하다가, 멍 때리며 지나가던 저를 가리키며 쟤를 좀 꼬셔볼까? 한 게 아닐까요. 사는 게 팍팍한데 인간들이 우리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니, 저 만만한 인간을 꼬셔다가 우리 이야기를 좀 해볼까냥, 하고요. 어찌 됐건 간에, 올 한 해 동안 함께 했던 길고양이 녀석들 덕분에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길고양이 일기'를 잠시 접어두고 '집사의 일기', 즉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길고양이 이야기, 왜 하게 되었나

 

이런 글을 쓸 때면 왠지 험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거창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길고양이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시시하고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길고양이 사진들이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죠. 또 왜 길고양이 사진들이 늘어났나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진을 좋아했지만 사진 때문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슬럼프를 겪었던 1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갑니다. 저는 원래 취미로 필름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당시 수동 기능이 있는 디지털 카메라는 제 형편에 너무 비쌌기 때문에, 10만원 초반 대면 구입할 수 있었던 중고 필름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쯤 그렇게 지내다가 사진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을 질끈 감아버릴 정도로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일로서 하는 사진에 주관이란 전혀 필요하지 않았고, 하루에 얼마큼의 양을 기계적으로 찍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죠.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버스에서 우연히 났던 충돌사고를 마지막으로 팔까지 한동안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필름 카메라는 처분을 하고 좋은 디지털 카메라를 갖게 되었지만, 이미 대상에 대한 마음이 거덜 나 버린 상태라 그런지 그 카메라는 좋은 기계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더군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짧은 여행을 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인 것이 바로 길고양이었습니다. 노란 길고양이가 노란 가로등 밑에서 밤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그날따라 왜 그리도 유난히 특별해 보였는지. 온몸에 묶여있던 피가 한 번에 흐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짐짝처럼 매고 있던 카메라를 그제야 꺼내게 되었죠.

 

 

 

 

 

초보 집사의 길고양이 적응기

 

제게는 길고양이의 첫인상이 도와주어야 할 불쌍한 동물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겉돌고 있던 제게 희망을 준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내일이라고 더 나아질 것도 없어 보였지만 주어진 오늘을 즐길 줄 아는 녀석들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저는 길고양이의 모습에서 저를 많이 투영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래 별것 아니야, 하고 심각한 것도 조금 느슨하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죠. 길고양이는 그렇게 제게 위로가 되었던 존재. 그리고 그렇게 시작했던 마음이 단순하고 밝았던 만큼 힘든 시간도 갑작스럽고 크게 찾아왔습니다.

 

 

 

 

 

매일 밥을 주고 놀았던 '노랑이' 녀석이 하루아침에 고양이 별로 떠났던 사건. 그것도 사라진 게 아니라 맞은편 빌라에 사시던 캣맘에게서 '노랑이가 의심쩍은 물을 먹고 죽었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으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제 봤던 건강한 길고양이가 오늘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그때까지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제가 길고양이를 챙기는 걸 보며 그냥 저러다 말겠지.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울기만 하는 저를 본 뒤로는 다시는 길고양이에게 정을 주지 말라며 반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설프게 빌라 주차장에다 밥을 주었던 것이 화근이 되어 누군가로부터 '고양이 밥을 주지 마시오'라는 통보까지 받게 되었죠.

 

 

 

 

 

길고양이와 함께 한 일 년, 변하거나 변하지 않은 것들

 

지난 일 년을 돌이켜 보면 이제는 웃을 수 있을 만큼 길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매일 밤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민첩한 몸놀림으로 영양 만점인 식사를 뿌려주는 것은 기본이오, 주말의 어느 시간대가 녀석들과 놀며 사진을 찍기에 안전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일 년 중 어느 계절이 가장 힘들고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도, 또 어느 정도는 녀석들만의 삶이라 참견하지 않고 마음에서 놓아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가장 속상했던 주변 사람들의 우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집에 늦게 들어오면 아버지가 먼저 "야옹이들 밥은 줬냐"고 물으실 정도니까요. 길고양이에게 정을 떼라던 어머니 역시 "얼룩이가 예쁘긴 예쁘다" 하며 출퇴근길에 녀석이 보일 때마다 몇 마디씩 말을 걸곤 하십니다. 길고양이만 보면 까무러치고 도망가던 친구들도 "내가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어떤 고양이를 봤는데~" 하며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일 년 전 볼 수 있었던 길고양이들 중 많은 녀석들을 지금 볼 수 없는 것이 그렇고, 길고양이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편견을 바꿀 수 없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직도 동네의 곳곳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매섭게 붙어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폭행한 사건이나 건강원에 팔아넘기기 위해 불법으로 포획하는 범죄자들,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며 주민들이 아파트 지하실에 길고양이들을 감금한 사건 등.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넘쳐나는 잔인한 사건들로 절망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나 하고 무력감도 많이 느끼고요. 그래도 머지않아 기운을 차리는 건, 지금도 어딘가에서 '오늘'을 충실히 살고 있을 수많은 길고양이들과, 그들을 위해 소리 없이 묵묵히 애써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별것 아닌 제 글과 사진도 역시 그 일부가 될 수 있겠죠. 얼마 전에는 구독자 중 한 분께서 '다가가면 도망가기만 하는 길고양이가 밉기도 했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왜 그래야 했는지 알겠다.'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도 제 글이 그런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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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mindman.tistory.com mindman
    2013.12.06 04:39 신고

    이렇게 소통하는 공간이 있으니,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주변을 더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

  2. 길냥길드
    2013.12.06 21:43

    일년동안 많은일이 있었네요^^
    저도 길냥이들 밥주면서 오히려 내가 위로받았고 밥줄때마다 남들이 안보나 엄청 눈치보고~~
    그래도 냥이들 맛있게먹는 모습보면 흐믓하죠
    계속 냥이들 잘돌봐주세요^ㅅ^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2.10 14:24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후딱 지나간 한 해였어요.@_@ 뭐가 뭔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요즘 밥주는 문제 때문에 심적으로 힘든 날이 많은데, 그래도 저 뿐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많은 힘을 얻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3.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12.07 00:09 신고

    제 블로그도 아닌데 괜히 제가 감회가 다 새롭군요;ㅁ;
    라흐님의 글로 인해 길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조금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ㅎㅎㅎ
    요번엔 바빠서 회고전에는 참여 못했는데 연말에 저도 한해를 돌아보고 내년에는 어떤 방향으로 글을 쓸 건지 좀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 2013.12.07 22:57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3.12.10 14:40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과찬의 말씀을..ㅎㅎ 감사합니다. 직업은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많이 좋아하는 일로는 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돈벌이로 하려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구요.ㅠㅠ 그래도 그때 길고양이를 만나 사진을 아예 놓지는 않았으니 제겐 길고양이가 은묘?인 셈이네요.^^ ㅋㅋ

  5. Favicon of https://mindman.tistory.com mindman
    2013.12.11 02:13 신고

    새로운 카테고리에 글을 검색하면서 가치있는 글을 올리시는 분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구독>신청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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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