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흘러가고 있던 지난 주의 어느 날 밤. 가족들과 사사로운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딩동, 벨이 울렸다.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초인종 소리가 나면 지레 겁부터 나는 게 집사의 삶인가. 늘 주민들의 눈을 피해 몰래 밥을 주고 있는데도 혹시나 어느 창가에서 날 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부터 되는 게 이제는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작은 인기척이나 초인종 소리마저 반갑지가 않은데. 심장이 쿵쿵거리며 잡생각을 하는 사이 어머니가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열었다. 그런데 3층에서 온 아주머니가 뜻밖에도 하는 말은 "있잖아요. 몽돌이가 똥 쌌어요."

 

 

 

 

덩치가 커서 큰 똥을 쌀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몽돌이

 

엥? 몽돌이가 똥을 쌌다니 그게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평일에는 가족 모두가 출퇴근을 하느라 몽돌이가 나갈 일이 없는데. 무턱대고 몽돌이가 똥을 쌌다는 아주머니도 뭔 생각이 있어 그런 말을 하시겠지 하고 물어보니. 며칠 전에 3층에서 2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큰 똥이 있어 몽돌이가 그랬겠거니 하고 아주머니가 치우셨는데, 오늘 아침에도 또 그 자리에 똥이 있어 얘기를 하러 오신 거라고. 이 건물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가족이 아주머니네와 우리집 밖에는 없는데, 아주머니네 강아지는 몽돌이 반 정도의 크기로 불과 3kg 정도 밖에 안되는 소형견이라 걔가 그랬다고 하기에는 그 똥이 너무 컸다는 거다.

 

 

 

 

흑흑.. 차라리 마음대로 밖에 나가 똥이라도 싸봤으면 좋겠네

 

아니 그렇다고 1층에 사는 개가 주인 없이 문을 열고 2,3층까지 올라가 똥을 쌌다는 말인가. 황당한 일이지만 머쓱한 듯 초코파이까지 들고 찾아와 계속 똥 얘기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측은하기도 하고. 결국 "다 같이 개 키우는 입장인데 우리가 치울게요" 하고 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아버지가 그 똥을 치우고 오셨다. 그런데 몽돌이는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에 불현듯 떠오르는 한 녀석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누렁이.

  

 

 

 

 

그날의 오전으로 흘러가 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아침에 한창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고양이 울음소리 비슷한 것이 들렸다. 맨날 고양이 생각만 하니 환청이 들리나? 하고 있는데 어머니 왈, 아침부터 애들이 할머니한테 밥 달라고 조르나 보다!! 하시는 거다. (참고로 2층 사시는 할머니께서 가끔 창문 밖으로 먹이를 던져주시곤 하고, 이 글에 나오는 3층 아주머니 역시 몇 번인가 애들 밥을 주신 적이 있다. 그리고 두 분은 모녀관계.) 이상하다. 걔네가 사람들 눈치 보느라 그렇게 당당하게 우는 애들이 아닌데.. 불길한 예감이 들어 머리를 말리다 말고 대문을 열고 나가 보니. 허, 정말 누렁이가 울고 있었다. 그것도 바깥이 아닌 건물 안에서.

 

 

 

 

 

아마도 추워진 날씨에 몸을 녹이려고 건물 안에 들어왔다가 그 사이 누군가가 현관문을 닫는 바람에 갇혔나 보다. 이곳 빌라는 지하도 없는 데다가 현관이 굉장히 좁은 편이라 고양이가 있으면 바로 탄로가 나는 구조다. 작년 겨울에도 건물 안에 숨어있다가 달아나는 고양이들 때문에 깜짝 놀란다며 현관문을 꼭 닫아달라는 안내문이 붙었었다. 집사인 내가 보기에도 이곳은 길고양이가 숨어 살기에 적합한 건물이 아니다. 녀석들은 사람 눈에 띌까 봐 늘 불안할 테고 주민들은 튀어나오는 녀석들 때문에 놀라 사고가 날지도 모르니. 얼룩이와 다른 녀석들은 진작 건물의 내부와 차단된 크고 깊숙한 인근 주차장에 터를 잡은 듯 보였으므로, 혼자 행동하지 않고 길고양이 선배들을 따랐으면 될 것을 왜 제 발로 들어와 건물 안에 갇혔다며 큰소리로 우는 것인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현관문을 열어 주었는데도,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구석에 숨어서 울기만 하던 녀석.

 

 

 

 

집에 사는 똥개는 그저 잠이나 쿨쿨

 

하루 종일 집만 지키던 몽돌이가 똥을 쌌다는 누명을 쓴 채로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집을 나서고 있는데 뒤에서 또 아주머니의 목소리. 이번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 번도 나와 직접 대화한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똥 사건의 범인(견 혹은 묘)을 어떻게든 잡고 싶으셨나 보다. 답답함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아주머니가 하는 말. "몽돌이가 쌌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누구 똥인지만 알면!!"

 

 

 

 

 

심각한 얼굴로 똥 주인에 대해 묻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자 잠시 웃음도 나왔지만, 사실 그 이후로 본격적인 근심이 시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몽돌이가 그랬다면 견주인 내가 나서서 죄송하다 하고 조심하면 그만이지만, 길고양이 짓이었다는 걸 알면 그 화살이 다 어디로 갈까.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주머니 역시 몇 번인가 창문 밖으로 먹이를 던져주신 적이 있지만, 먹이를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곧 캣맘은 아니다. 인정으로 몇 번 밥을 주다가 피해를 받는다 느끼면 되려 녀석들을 미워할 수도 있는 일. 어쨌거나 그렇다고 집에만 있던 애꿎은 몽돌이 핑계를 댈 수는 없는 노릇이고, 누렁이 녀석이 애먼 곳에 터를 잡으려고 한 것은 잘못이지만 흙이 없는 곳에 갇혀서 똥 싼 걸 가지고 탓할 수만도 없다. 또 집 앞에서 두 번이나 주인 없는 똥을 본 아주머니의 짜증 또한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한 일. 모든 정황을 아는데도 이게 이렇다 저게 저렇다 말도 못하고 어두운 날 남몰래 락스로 건물 계단을 훔치고 있자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무한한 고독감과 회의감이 몰려왔다.

 

 

 

 

 

현관문에는 수도가 얼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문을 꼭 닫아 달라는 안내문을 써 붙여두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렇게 대충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절망스럽게도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사연이 길어서 2편에서 마저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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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happy-q.tistory.com 해피로즈
    2013.12.11 12:48 신고

    에휴~
    어두운 날 남몰래 락스로 건물 계단을 훔치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몰려드는 무한한 고독감과 회의감"에 저 또한 무한한 공감을 하는 바입니다.^^
    똥 사건이 결국 절망스럽게 터진 모양이군요.. 에구~
    참 이래저래 안타까운 길고냥이들이에요..

  2.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3.12.11 21:58 신고

    정말 길고양이가 덩 주인인 걸 아주머니가 알면 길고양이들이 더 편치 못할텐데요.. 이 겨울에.. ㅜㅜ
    추워서 안에 들어와 싼걸까요.... 누렁이 아니면 얼룩이가 사건의 피의자일 것만 같아요.. 우짜스까...
    2편이 넘 궁금하면서도 걱정되네요....

    라흐님~ 엽서는 넘 잘 받았어요~~ㅎ ^^ 정말 이뻐요~~~ 이뻐서 남 안 주려고 저희집 포토보드에 붙여놨어요~ㅎ

  3.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3.12.11 22:54 신고

    어제인지 이틀전인지 길고양이들 때문에 피해본다는 식의 뉴스가 나와서 넘 속상했는데 이 글 보니 다시 생각나네요.
    피해를 보면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악의를 갖고 그러는 것도 아니니 조금만 더 관대하게 봐주셨으면...;ㅁ;
    남몰래 락스질 하셨을 라흐님께 감사드리고 마음으로나마 토닥여드리고 싶어요~
    아참 억울하게 누명쓴 몽돌이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4. 2013.12.12 17:01

    비밀댓글입니다

  5. 박은주
    2013.12.17 20:35

    라흐님~~~ 엽서 잘 받았습니다. 진즉이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래저래 정신이 없어서 이제야 인사를 드리네요...
    남에게 주는 것도 너무 아까워서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라흐님의 글을 보며 웃고 울고 한답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캣맘 일이지만 저나 라흐님이나~~
    길아이들에게 한번 빠진 마음 거두기는 너무도 힘들듯해요.
    라흐님이 거두고 계신 아이들 모두 추운 이 겨울 잘 이겨내길 빌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