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에 오를거다냥"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웠던 지난 주말. 얼룩이 가족과 늘 주말 만남을 갖는 한산한 장소에서 녀석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누렁이 녀석, 따뜻한 자동차의 보닛 위에 오르기 위해 화분 위에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간다냥!!"

 

발톱을 세우지 않은 찹살똑으로 착, 하고 사뿐히 보닛 위에 오릅니다. 이제 제법 몸짓도 커지고 겨울 생활도 순조롭게 해나가는 걸 보니 누렁이도 성묘가 다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얼룩이에게 솜방망이 펀치를 맞으면서 뒤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다녔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사진을 확인하던 중에 큰 충격을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제껏 '당연히' 암컷이라고 생각했던 녀석의 뒤에 수컷의 땅콩이 보인 것이죠. 녀석의 초상권을 위해 굳이 그 부분을 확대하지는 않겠지만.. 언뜻 봐도 제법 무르익은 땅콩이 달려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 이제 알았냥..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왜 이제껏 단 한 번도 누렁이가 수컷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 했던 걸까요. 생각해보니 녀석을 처음 만났던 것은 작년 여름, 먹이가 없는 지역에 태어나 버려진 휴지를 뜯어먹고 있던 녀석은 심각한 영양 부족 상태였습니다. 그 후로는 얼룩이의 영역에 무사히 안착해 굶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극심하게 굶었던 기억 때문인지 식탐이 가장 많은데도 이상하리만치 성장이 더뎠습니다. 다 자랐는데도 체구가 얼룩이보다 조금 작으니 당연히 녀석을 암컷이라 여겨왔던 것이죠. 2013/10/31 - [길고양이] 언니는 나의 롤모델이다냥 / 누렁이의 성장기 

 

 

 

 

 "누렁이가 내 여동생이 아니라 남동생이었다고?"

 

고양이들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을 텐데, 무지했던 집사만 누렁아~ 얼룩이 언니랑 잘 놀았니? 하며 여자애 취급을 했으니..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걸 이제 알았냥? 이 바보 집사야아~"

 

그래도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뒤 다시 생각해보니 누렁이가 수컷이 된(?) 덕분에 안심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우선 암고양이들이 평생 겪는 출산의 고통을 느낄 일이 없을 것이고, 인간들과 주택가에서 함께 살기 위해 부득이하게 TNR을 한다고 해도 암고양이들의 수술에 비해 간단하기 때문에 수술 부작용이 일어날 확률이 적습니다. 또한 얼룩이 가족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근엄이가 현재 나이도 꽤 많고 쇠약해진 상태인데, 누렁이가 그 뒤를 잇는다면 지금과 다르지 않게 그 가족들이 영역을 공유할 수 있겠죠.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어느 날, 길고양이 남매의 따뜻한 풍경.

 

가끔 아침 출근길에 볼 수 있었던 이 풍경이 이제는 다르게 보입니다. 중성 고양이 얼룩이와 매일 누나의 죽빵을 맞고 사는 수컷 고양이 누렁이. 늘 티격태격하지만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든든한 서로가 되기를.

 

 

 

 

 

 

COMMENT

  1.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2.11 09:46 신고

    ㅎㅎㅎ 누렁이가 남동생이었다니~ 충격이에요~~ㅋㅋㅋㅋ
    근데 왠지 든든한 남동생이 생긴 것 같아 더 맘이 놓이네요~~ 누나 얼룩이도 막 보호해 줄 것 같구~~ㅎㅎ
    라흐님 말씀처럼 근엄이 뒤를 이어 동네를 평정했음 좋겠어요~~ ^^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2.12 11: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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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라고 막 얼룩이를 보호해줄 것 같지만.. 실상은 매일 죽빵만 맞고 살아요 ㅋㅋ 얼룩이가 발바닥으로 퍽 치면 옆으로 조용히 가서 찌그러져 있더라구요 ㅋㅋ
      암컷인줄 알고 걱정을 너무 많이 했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반가운 소식이에요^^

  2.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4.02.12 13:17 신고

    남묘였다니 새삼 충격이에요ㅋㅋㅋ
    고양이들은 남녀노소 미모가 출중한 애들이 많아서 성별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설이도 처음 저희집에 왔을 땐 암컷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남자애였죠ㅋㅋㅋ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2.12 14: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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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요!! 뭔놈의 수컷이 저렇게 예쁜 브이라인 얼굴을 가졌대요-.- 심지어 지난번 길고양이 똥사건때는, 윗층의 아주머니가 누렁이가 건물안에 자꾸 들어온다며 새끼 낳으려고 하는것 같다고 하셨었죠 ㅋㅋ 당시엔 속상했는데 수컷인거 알고나니까 새삼 우습네요
      설이도 지금은 좀 남정네 느낌이 나긴 하는데 어릴적 사진보니까 너무 작고 예쁘게 생겨서 여자애 같더라구요 ㅎㅎ 이런 꽃미묘들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