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건강했던 얼룩이.

 

흰돌이가 입양을 갔던 지난 주말. 이제 길고양이 집사의 인생도 좀 피는구나 싶을 정도로 묵은 피로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면 얼룩이가 일주일째 보이지 않고 있는 것. 아침 출근길에 집 앞 빨간 스쿠터 위에서 잘 다녀와라냥! 인사를 해주거나 저녁 퇴근길에 배가 고파 햄버거라도 먹고 오는 날이면 왜 이렇게 늦은 거냥! 하며 따라와 밥을 독촉하던 녀석. 그런 녀석은 일주일째 온데간데없고 다른 고양이들만이 얼룩이가 있던 자리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었다.

 

 

 

 

일주일 만에 병에 걸린 채 나타났다.

 

사실 얼룩이가 일주일 정도 자취를 감추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시에서 시행하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받고 왔을 때가 그랬고, 가을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일주일 만에 불쑥 나타났었다. 그 당시 울며불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걱정을 시켰던 터라 이제는 녀석을 믿어보도록 하자, 봄맞이 무전여행이라도 다녀오나 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 했다.

 

 

 

 

 

그렇게 애써 위로하며 잠들었던 지난 금요일 밤. 밤새도록 고양이들이 나와 나를 원망하는 듯한 이상한 꿈을 꾸는 바람에 주말인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세수도 하지 않고 후리스만 대충 걸쳐 밖으로 나가보니 집 앞은 어제와 다름없이 휑할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작은 목소리로 얼룩아~ 얼룩아 부르다가 에이! 하면서 뒤를 돌아서려는데.. 어디선가 "쉬익.. 쉬익.." 하는 소리가 났다.

 

 

 

 

 

얼룩이였다. 내 부름에 대답을 하려는 듯한 녀석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목소리조차 나지 않는지 메마른 소리로 쉬익, 쉬익 연신 울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길에 사는 짐승이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리는 게 놀랄 일이겠냐마는, 순간 대책 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보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녀석에게 의지를 해왔는가를 느낄 수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놀랐는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아래로 내려갔다. 그동안 나를 따르면서도 사람 손을 타지 않아 걱정이 안되었던 녀석인데, 몸이 아프자 부쩍 더 경계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먹이와 물, 카메라를 들고 나와 녀석을 따라갔다.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면 일단 먹이와 물을 먹이고 사진을 찍어가 약을 타오려는 생각이었다. 한참을 내려가던 녀석은 흙이 있는 공터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신 가쁜 숨을 쉬고 눈물 콧물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고양이 감기인 허피스나 칼리시에 걸린 듯했다. 겨우내 먹였던 엘라이신과 영양제도 소용이 없구나 싶어 분통이 터졌다.

 

 

 

 

 

바이러스에 해당하는 저 병들은 사람의 병으로 치면 감기 같은 거라 자연 치유되는 경우도 많지만, 심해질 경우 호흡기 질환으로 이어져 폐렴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약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먹이와 물을 내밀자 녀석은 입맛이 없는지 물만 조금 할짝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먹이를 거부하는 것을 보자 병이 더 심해질 거란 불안감이 스쳤다. 주말이 지나면 다시 회사에 묶여 녀석을 따라다닐 수도 없는데. 나를 믿고 아픈 몸을 맡겨주기를 바라며 사십분 정도를 공들여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갔다. 일단 등을 쓰다듬는 것까지는 허락을 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고 녀석을 안아 들어 올린 순간, 녀석은 발버둥을 치더니 있는 힘을 다해 나를 밀치고는 달아나 버렸다. 차 밑으로 몸을 숨기더니 짓물러 떠지지도 않는 눈을 크게 하고 나를 쳐다보는 녀석. 아마도 녀석은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놀란 얼룩이를 뒤로하고 최근에 흰돌이가 입원했던 병원에 전화를 했다. 목동에 있는 그 병원은 우리 집에서는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먼 거리지만, 일반 병원 중에는 간혹 길고양이 진료 자체를 받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길고양이 구조가 어려운 상황이라 사진과 보호자 설명만 가지고도 약을 조제 받을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친구와 약속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으로 가서 약을 2주치 조제 받고 왔다.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약만 먹여보지만 증상이 심해지거나 먹이를 거부할 경우 탈수 증세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반드시 구조 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돌아와 약을 먹이기 위해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밤늦도록 녀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몇 주차장과 공터를 둘러보아도 녀석이 없어 일단 있었던 자리에 약과 닭고기 캔을 섞어서 놓아주곤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낮에 놀라서 더 이상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일까. 원망은 나중에 하고 일단 먹어야 살 것이 아니냐. 심란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 자정이 넘은 시각 맥주를 사러 집을 나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터덜터덜 올라오는 녀석. 얼룩아! 부르니 녀석은 쉬익, 쉬익하고 힘겹게 대답을 해주었다. 나를 피한 게 아니라 몸이 힘들어 나오지를 못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약은 먹일 수 있었지만, 이 글을 쓰는 일요일인 지금 녀석의 상태는 어제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다. 쉬익 거리던 목소리는 더 갈라져 케엑, 케엑 연신 숨을 토해내고 얼굴은 성했던 반쪽마저도 망가져버렸다. 몸이 성치 않을 때 인간은 달갑지가 않은 건지 나를 보면 대답만 하고 다가오려 하지를 않는다. 봄을 앞두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얼룩아.

 

 

 

 

 

 

COMMENT

  1.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3.10 08:57 신고

    아... 흰돌이로 아쉬움과 안도감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래요... ㅜㅜ 추운 겨울 잘 견뎌냈는데... 봄을 코앞에 두고...
    사진보다 더 심해졌다니 너무 걱정이 됩니다... 라흐님께 다가오기라도 해야 구조해서 치료를 할텐데요..
    얼룩이가 잘 견뎌내 주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1 11: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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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를 그렇게 따르던 녀석인데.. 아프니까 자꾸 숨으려고 해서 약 먹이기도 너무 힘드네요. 저녁마다 주차장이니 길목을 돌면서 찾고 있는데 며칠째 실패예요. 다행히 오늘 오전에 봐서 북엇국이랑 약 챙겨주고 왔어요. 기침은 좀 잦아들었는데 눈의 염증이 너무 심해졌더라구요. 좀 더 지켜보다가 안 나으면 구조 시도해봐야죠. 응원해주세요!

    •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3.11 12: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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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입니다~~!! 라흐님도 얼룩이도 응원할게요~~ 꼭 나을거에요~~!!
      집냥이들 아픈 것 보다 더 맘이 안 좋아요... 힘내세요~

  2. 몽실언니
    2014.03.10 13:36

    에공 호사다마라더니..ㅠㅠ 얼룩이 얼릉 건강해지길 바래요!!


  3. 2014.03.10 16:33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1 11: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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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되도록 길고양이와는 적당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면서도.. 저 녀석과는 그게 힘들더라구요. 덕분에 요즘 지옥을 맛보고 있네요. 하.. 어떻게든 살려내 봐야겠죠.
      돌보시는 고양이가 구내염이라면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그게 그렇게 무섭다던데..ㅠㅠ 병원 치료 잘 받고 회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4. 얼룩이 사랑
    2014.03.13 17:34

    도울 일이 있을까요?
    넘 마음이 아파 차마 사진은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3 18: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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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차도가 없다가 어제부터는 제법 식당에도 잘 나타나고 밥도 열심히 먹는 게 많이 위험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요. 혹시 몰라서 고보협에 통덫도 신청해 놓았어요. 며칠 전보다 염증도 가라앉고 목소리도 맑아졌으니 너무 걱정 마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5. 고양이는 얼룩
    2014.03.14 01:29

    다 나았다는 소식 기다리고 있어요...
    얼룩아~환절기 감기라 생각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라~~~
    기운내라 얼룩!!!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4 1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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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룩이가 아픈지 2주가 넘은 것 같네요. 그래도 며칠 전부터 부쩍 차도를 보이고 어젯밤에는 예전처럼 동강동강 뛰어다니며 밥 달라고 조르더라구요.^^ 투병기가 길어질지도 모르지만 꼭 나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6. 얼룩이 사랑
    2014.03.14 04:04

    라흐님
    염치없지만 얼룩이 꼭 치료해 주세요
    너무 맘이 아파요

    라흐님은 정말 천사세요☆
    미안하고 또 고마워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4 1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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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저 녀석은 저에게 무척 특별한 고양이라.. 저 녀석이 나아야 저도 편하게 지낼 수가 있어서.^^ 그래도 녀석이 살려고 애쓰는 게 보이니 저도 믿고 의연해지려고 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7. 힁님
    2014.03.14 18:14

    그 병원 ㅎㄴ 동물병원이네요. 우연찮게 갓다가 고양이진료를 굉장히 잘보는 곳인걸 알앗고 길냥이들진료도 티엔알도 잘해주는곳이지요. 저도 동네 냥이들을 돌보는 캣맘으로서 항상 응원하고 잇습니다. 얼룩이가 얼른 깨끗한 얼굴을 보여줫음 좋겟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