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주말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하나 눈 주위에 염증이 있다.

 

길고양이 얼룩이가 아파서 만사를 제치고 병원에 달려갔던 지난 주말,

의사 선생님이 약을 조제해 주시며 물었다.

"하루에 두 번 챙겨주실 수 있나요?"

낫게 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싶어 네!! 대답했지만

막상 길에서 사는 녀석의 병수발을 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 다녀왔던 날에도 녀석은 어디엔가 꽁꽁 숨어있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나타났고,

그다음 날인 일요일은 집에서도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 몇 시간 간격으로 나와

주차장이니 골목을 돌며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환묘 얼룩이를 위한 영양만점 식사는 모두 다른 길고양이들의 보양식으로 돌아갔다.

(약을 섞어준 게 걱정이 되어 의사 선생님에게 물으니 건강한 고양이가 약을 먹는 것은 괜찮다고.)

 

 

 

 

 화요일, 다시 상태가 심해져 다른 쪽 눈에도 진물이 나오는 상태.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내 밥 차려먹기도 힘든데

며칠째 안 나타나는 녀석을 찾으러 옷도 못 갈아입고 다시 밤거리로 나가 어두운 주차장을 전전하고 있자니

괜스레 녀석이 야속하기도 했다.

내가 뭐 같이 살자는 것도 아니고 아플 때 약 좀 먹으라는 데

누가 길고양이 아니랄까 봐 숨고 난리야!!

이번 일로 느낀 거지만 길고양이가 나오길 원치 않을 땐

인간이 백방으로 찾아본다 한들 절대 찾을 수가 없다.

 

 

 

 

 

밤마다 보이지 않아 인간 애를 태우던 녀석은

그래도 기운을 조금 차렸는지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나타났다.

그래도 녀석이 살려고 하는구나 싶어 부랴부랴 다시 집에 들어가 먹이와 약을 챙겨주었다.

아침에는 보는 눈이 많아 먹이를 챙겨주지 않았었지만

녀석이 오전에만 나타난다면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아침에도 식당 영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엄마는 "기왕 챙기는 거면 빨리 챙겨줘야지, 애가 아픈데!" 하시며 바로 북어를 반토막을 내서는 물에 담가두셨다.

 

지난주 병원을 다녀오던 길에 시장에 들러 북어를 한 마리 샀었다.

그런데 사놓고도 어찌하지 못 했던 건 크고 실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가뜩이나 "바깥 짐승에게 너무 정 주지 말아라" 하시던 부모님이기에

길고양이가 아프다고 북어까지 두들기고 끓이는 모습을 보인다면 "참 가지가지도 한다!" 하고 눈치를 주실까 봐.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엄마가 대뜸

"얼룩이는 좀 어떠니" 물어보시는 거다.

"눈 염증이 심하고 입맛이 없는지 뭘 줘도 잘 안 먹어" 했더니

"뭘 먹어야 살지.. 뭘 줘야 먹겠니" 하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왠지 무서워! 하셨던 분인데

아마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날이 길고양이 집사로 거듭나고 있는 자식의 영향 때문도 있을 거고,

오며 가며 동네에서 얼룩이가 야옹~ 하고 인사해주던 탓에 정도 들으신 걸 거다.

 

"엄마!! 고양이한테는 북어가 그렇게 좋대!! 사실 내가 북어도 사다 놨어"

하며 창고에 숨겨놓았던 북어를 가져와 냉큼 내밀자

"어이구! 그걸 그렇게 모셔둔다고 북엇국이 되냐!" 하시며

단번에 뽀각뽀각 북어의 대가리와 몸통을 분해시키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거실에는 고운 북어의 살코기와 맑은 국물이 각각 깨끗한 통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아, 정말 효도해야겠다.

 

 

 

 

 

저를 향한 인간들의 정성을 알기라도 하는지

얼룩이는 화요일 밤 야간 식당에 나타났다.

오전보다도 훨씬 더 심해진 상태였지만,

챙겨준 북어가 입에 잘 맞는지 와구와구 먹는 걸 보고는

마음을 한시름 놓고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국물은 수상쩍은지 한 입도 안댄다.ㅠㅠ 야 그게 얼마나 좋은 건데..)

 

 

 

 

수요일, 염증의 흔적이 보이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보인다.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눈의 염증이 극심했던 어젯밤보다는 확연히 좋아진 모습.

엄마의 북엇국 덕분일까? 약이 조금씩 효과를 보는 걸까.

어쨌거나 아픈 이후로는 제일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아침이었다.

 

 

 

 

 

게다가 일주일 넘도록 쉭, 쉭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내던 녀석이

어느새 야~옹~ 하는 제 목소리를 내는 걸로 보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얼룩아, 오늘은 그래도 괜찮아 보이네? 이따가 꼭 밥 먹어" 하자

녀석은 나 정말 아팠다옹 하고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야아아~~ 오옹~~" 하며 서글프게 울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한들

결국 길고양이가 살고 죽는 건 그들의 몫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운을 내라 얼룩아!

열심히 먹고 나아서 누렁이와 푸른 봄길을 동강동강 뛰어노닐자꾸나. 

 

 

 

 

 

 

COMMENT

  1.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3.14 08:49 신고

    아... 정말 다행이에요.. 사진으로 봐도 확실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 라흐님의 정성을 아마 얼룩이도 알거에요...
    얼룩이를 물어보시고 북어국을 끓여주신 어머님 마음에 울컥합니다... ㅠㅠ
    얼룩아~~ 많은 사람들 애태우지 말고 어여 건강해져야해~~!!!

  2. 몽실언니
    2014.03.14 11:24

    정말 다행이에요~ 얼룩이가 감기를 아주그냥 호되게 앓았네요..라흐님도 어머님도 너무 좋은 분들이 돌봐주고 계시니까 얼룩이는 얼릉 다 나을 거에요~^^ 얼룩아 힘내! 얼릉 건강해 지라냥~

  3. 얼룩이 사랑
    2014.03.14 13:02

    라흐님 감사해요
    정말 고맙습니다!

  4. Favicon of https://meeoow.tistory.com 괭인
    2014.03.14 18:28 신고

    얼룩이 소식 기다리고 있었어요.. 얼룩이가 어서 건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생기발랄하던 아이니까 병도 잘 이겨낼 거라 믿어요. 그리고 라흐님의 정성, 감사드립니다.

  5. 얼룩이
    2014.03.15 03:18

    얼룩이 좀 어떤가요? 저도 며칠 째 밥 챙겨주던 길냥이가 보이지 않아 맘이 철렁합니다-_-
    너무 보고싶네요 T_T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9 12: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얼룩이는 다 나았습니다.^^ 약도 조금 남아서 비상용으로 비축해 두었어요. 돌보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니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가끔 건강한데도 며칠 안 보이는 경우가 있으니 기다려보세요! ㅎㅎ

  6. Favicon of https://mrsnowwhite.tistory.com 아스타로트
    2014.03.16 01:37 신고

    얼룩이가 아프다고 해서 놀랐는데 나아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ㅁ;
    어쩌다 저런 병에 걸렸는지... 얼른 깨끗하게 나았으면 좋겠어요~
    라흐님도 어머님도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것 같아요ㅎㅎㅎ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3.19 12:24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그러니까요. 한겨울에도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놈인데.. 최근에 스트레스 받은 일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ㅠㅠ 허피스는 계속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라고 하던데 재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7. 냥냥
    2014.03.16 01:52

    정말 좋은일하시네용~멋지세요~~
    저도 길냥이밥챙기긴하지만...부끄럽네용
    맘이 따뜻해집니다

  8. 정신우
    2014.11.04 16:01

    북어대가리찾다가 여기까지왔네요
    오래된 아파트라 연탄버리는 통로가 있었는데 사용하지 않아 녹두심하고 열리지 않는상황 입니다 그곳에 새끼고양이가 한놈이 들락였는데 이틀전부터 사료도 그대로인거 같고 소리도 약한 신음소리맛 한번 들려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밤새 홀로 간건 아닌지 걱정스러워서 혹여나싶어서 북어삶아서 조금 가져다놓았거든요 먹는지 어떤지 보려구

  9. 정신우
    2014.11.04 16:07

    손바닥보다 조금큰데 다른형제도 없는거 같고 어미도 보이지 않아요. 어린고양이가 혼자 살아갈수 있을까요 이제 밤이면 많이 춥던데... 그리고 정말로 북어삶은물이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