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는 지금까지 제가 보았던 길고양이 중 가장 바보 같은 녀석입니다. 야옹이가 낳은 새끼들이 모두 경계심이 강하고 똑 부러진 것에 비해 이놈은 순박하다고 해야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누나인 얼룩이가 심심하면 머리통을 솜방망이로 때리는 데도 마냥 좋다며 따라다니질 않나, 엉덩이도 내리지 않고 부들부들 떨며 일어서서 오줌을 싸질 않나. 툭하면 빌라 안에 잠입해서 문이 닫혔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녀석이 안 보일 때면 근처의 빌라 문을 열러 다니기도 했었죠. 어릴 적 병약했던 탓에 집사가 오랫동안 정을 주지 않았는데도 우렝!! 우렝!! 하는 요상한 소리를 내며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둥 하여간 특이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이날은 어쩐지 녀석의 눈빛이 비장해 보였는데요. 봄을 기다리는 화분의 마른 가지에 볼일이 있는지 껑충 뛰어오르길래 녀석의 뒤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켜보았습니다.

 

 

 

 

 

누렁아~ 뭐 하려고 그러냐?

 

"나 말이냐옹?"

 

 

 

 

 

"보시다시피 화분을 살피는 중이다옹"

 

봄을 맞이해서 씨앗이라도 심으려는 걸까요? 녀석은 고양이 중에서도 유난히 풀을 좋아해서 한겨울에도 마른 들풀을 찾아 씹어먹곤 했습니다. 차가웠던 계절이 가고 봄기운이 느껴지자 건강한 새싹을 피워줄 화분을 찾나 봅니다. 서 있을 장소가 협소한데도 고양이 특유의 유연한 몸동작으로 우아하게 마른 가지의 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한잎 한잎 냄새를 맡고 우렁찬 고양이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거다옹"

 

녀석의 표정이 너무 진지한 바람에 괜스레 숙연해지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녀석의 표정을 보니 문득 작년의 얼룩이가 생각이 나는데요, 얼룩이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 않았던가요? 

 

 

 

 

우리 동네의 조경은 내가 책임진다옹!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해당 포스팅으로 이동합니다.

 

작년 여름 얼룩이의 모습입니다. 한잎 한잎 일일이 냄새를 맡아보는 정성이 바로 프로의 기본 정신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주었었죠. 누렁이가 어릴 적부터 누나의 행동만 따라 하더니 식물에 대한 관심도 얼룩이의 영향인가 보네요.

 

 

 

 

 

"토닥토닥.. 잘 자라야 한다옹"

 

그날 이후로도 누렁이의 화분 사랑은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누나의 뒤를 이어) 우리 동네의 화분은 내가 지킨다냥!"

 

화분에 관해서만 용맹한 누렁이. 그런 녀석을 위해 이번 봄에는 동네의 화분마다 건강한 식물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COMMENT

  1.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4.10 09:03 신고

    고양이도 사람처럼 성격이 얼굴에 나타나는 걸까요..? 누렁이 얼굴이 정말 순박하고 착하고 정도 많아 보여요~ㅎ ^^
    누나 누렁이에게 인수인계 받았나봐요~ㅋㅋ

  2. 누렁이
    2014.04.11 17:07

    우히히히~
    누렁이도 프로가 다 됬구나!
    그래 그래...장하다. 장해! 이제 얼룩이 누나한테 개미사냥 배울거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