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근엄이가 나타났다. 중성 고양이가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수컷답게 여러 영역을 걸치고 지내는 녀석.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보니 역시 반가웠다. 곱게 차려입은 낡은 턱시도와 얇은 팔, 근엄한 표정까지 모두 그대로인 모습이다. 얼룩이와 누렁이는 오랜만에 만난 아빠에게 무슨 장난을 칠까 궁리라도 하는 듯이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야~ 아까 말했던 거, 알지?!"


"그래 알고있다냥!"






그러다 근엄이가 고개를 휙 돌리자 아무 일도 아니란 듯이 딴청을 피우며 어슬렁거리는 녀석들.

 

"뭐여?"

 

"아.. 아무것도 아니다냥.."

 

 


 


"어딜 갔다 왔는지 냄새나 맡아보자냥"

 

녀석들이 뭘 하든지 말든지 근엄이는 이따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 얼룩이가 주책 맞게 제 엉덩이 냄새를 맡는데도 끝까지 근엄함을 잃지 않을 정도이니. 급기야 누렁이는 재미없다는 듯이 귀를 벅벅 긁고는 새로운 놀이를 찾으러 가버렸다.






"쳇, 아빠는 너무 재미없어!!"


'....근엄'






심심함을 견디다 못해 떠난 누렁이가 주차장에서 낙엽 한 장을 주워 축구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낙엽을 자꾸만 근엄이쪽으로 몰아 차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관심을 끌려는 것 같다.






"대체 뭐하는겨.."


심지어 차고 놀던 낙엽을 입에 넣는 시늉까지 해보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하기만 할 뿐.






"하 정말 뭐 저렇게 썰렁한 고양이가 다 있냐옹..?"


누렁이는 시종일관 근엄하기만 한 아빠에게 앞발 뒷발 다 들어버렸다.





근엄이는 근엄해서 근엄이다.


다른 녀석의 장난을 받아줄 재치도 융통성도 없는 무뚝뚝한 고양이, 근엄이. 하지만 녀석이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야옹이 가족의 영역은 전보다 안전해진 느낌이다. 반가웠다며 눈인사를 찡긋해 보이자 녀석은 또 고개만 살짝 들어 "가게나" 하고 인사를 해주었다.



 


 

 

COMMENT

  1. 근엄이
    2014.04.11 16:54

    근엄이 아저씨~
    아저씨는 왜케 귀여워염!
    아주 귀여워 죽겠쪄염~~~

  2.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4.12 09:11 신고

    ㅋㅋㅋㅋㅋㅋ 근엄이는 정말 암것두 안 해도 넘 귀여워요~~ 막 디게 근엄한데 진짜 귀여워요~~ㅋㅋ
    튼실한 궁디도 넘 귀엽구요~~ ㅋㅋ 근엄이 자주 보고싶어요~~ ^^

  3. Favicon of https://kirinsnap.tistory.com 기린스냅
    2014.04.12 12:21 신고

    턱시도를 차려입은 근엄이의 포스가 장난이 아닌걸요? 마치 부엉이 같기도 하고 ㅎㅎ 너무 재밌게 보고 갑니다.^-^

  4. 그리스
    2014.04.13 14:15

    살이 좀 찐 것 같고, 중성화 수술을 해서 그런지 되게 얌전해졌네요.
    근엄이 이름 누가 지었는지 진짜 작명소 차려도 되겠어요. 너무 잘 어울려요.

    • Favicon of https://rach02.tistory.com 라흐 
      2014.04.14 12: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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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성화 수술을 한지는 1년이 넘었는데, 저리 순해 보여도 다른 동네 녀석이 오면 엄청 무섭게 쫓아내요. 중성화 수술 후 영역에서 밀려나는 애들도 있다고 하던데 이 녀석은 여전히 왕초의 자리를 지키고 있죠.^^ 정신력이 강한 고양이인 것 같아요. 이름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