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의 이사 후, 빈 창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길고양이.


해 질 무렵 동네에 도착하면 종종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있었다. 올망졸망 모여 먹이를 기다리는 길고양이들과, 창문을 반쯤 열고 초조한 듯 망을 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마다 먹이가 든 봉지를 힘껏 던져주시던 할머니. 녀석들이 기다리는 곳이 하필 작은 도로변이라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할머니에게 가면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녀석들의 신뢰 가득한 눈빛과, 먹이를 던져주시기 전 저리로 던질 테니 잘 받으라는 듯 길고양이 하나하나에 눈을 마주치시던 할머니의 눈빛이 좋았다.






투명한 봉지에 든 먹이는 대부분 닭고기였다. 맛있는 닭고기 향이 가득 배었을 봉지를 물고 기분 좋은 듯 총총 사라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공복일 때도 괜스레 배가 불렀다. 그렇게 녀석들의 저녁 식사를 구경하던 어느 날, 어쩐 일인지 해가 다 지도록 할머니의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부분 길고양이들은 기다리다 지친 듯 돌아가거나 자동차 밑에 누워있었고, 먹칠이만이 망부석처럼 목이 빠져라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가 길어지니 늦게 주시려나 보다, 하고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낯선 할머니가 다가와 "누구 기다려, 고양이 밥 주는 할머니?!" 하고 물었다. "아.. 네.. 하하" 하고 애매하게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그이 얼마 전에 이사 갔어!!" 하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놀란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가 이사를 하신 건 고작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주말 무렵이었다. 할머니께선 오랫동안 계획하신 일이었을 수도 있고, 가끔 만나뵐 적마다 가벼운 인사 정도만 한 내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섭섭하고 놀란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녀석들은 그것도 모르고 어제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기다리다 보면 곧 창문이 열리고 먹이가 든 봉지가 휙 하고 하늘을 날아 내 앞에 툭 떨어질거야, 하고. 길고양이는 밥 주는 사람이 떠나면 원망도 물음도 할 수가 없다. 떠난 줄을 모르기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이 지역에는 떠난 할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캣맘도 여럿 계시다는 거다. 이날도 주변을 둘러보니 구석에서 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사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먹칠이에게 가져가 주었지만, 녀석은 할머니가 주는 밥이 아니면 싫다는 건지 냄새만 몇 번 맡더니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익숙해진다는 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다. 녀석은 어쩌면 할머니가 주는 밥보다 할머니를 더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저녁 시간만 되면 목이 빠져라 빈 창문을 바라보며 마음을 안타깝게 했던 녀석은 기다림에 지쳤는지 더 이상 보이질 않는다. 차 밑에 올망졸망 숨어 기다리던 다른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 제 나름대로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곳에서 먹이를 찾는 걸까. 부디 녀석에게 너무 아픈 이별이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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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Favicon of https://happy-q.tistory.com 해피로즈
    2014.06.11 08:23 신고

    캣맘의 이사,
    아무것도 모르고 늘 그곳에 와서 기다리는 길아이들..
    마음이 우울해지고 짠해지는 일이에요.
    캣맘에게 여러가지 변고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이 아이들이 참 문제지요.
    그 비슷한 맥락의 얘기로, 저는 제가 지금보다 늙으면 고양이를 키우면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어느날 나의 명이 다하여 늘 함께 지내던 고양이를 두고 떠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휴..
    저 녀석들..
    저기서 언제까지 할머니를 기다릴지...

  2. Favicon of http://dorahm.egloos.com 윤도람
    2014.06.11 16:20

    ... ㅠㅠ 아가들 넘 이뻐서. 할머님의 맘도 넘 이뻐서. 눈물이 나네요. 할머니가 어딘가 이사를 가셨어도, 다른 캣맘들이 있다는 얘기에 한숨 돌렸어요. 길지 않은 포스팅인데도, 이 포스팅이 해피엔딩 아닐까봐, 두근두근했네요.

    정작 우리 집앞 아이들도 제대로 못 챙기는 처지인데, 남의 동네 길냥이들 사연들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것도 제 맘 편하려는 이기적인 욕심인 것 같아 부끄럽네요. 사진과 글 넘 고맙습니다.

  3. 힁님
    2014.06.11 18:35

    저도 이사가기를 좀처럼 결단내리기 어렵답니다.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버리고나면 집앞을 서성이고 그저기다릴 아이들때문에요. 이래저래 고양이몰아내는 양쪽집 노인들이 잇어서 밥주기도 벅차지만요. 먹칠이 배트 부디 정주며 지낼곳 찾길바라요. 라흐님도 화이팅!

  4. SassyMissyGoldy
    2014.06.12 02:24

    맘이 짠해 지네요...

  5. Favicon of https://salt418.tistory.com +소금+
    2014.06.15 10:44 신고

    너무 맘이 아파요... ㅠㅠ 냥이들은 저렇게 사람을 믿고 기다리는데... 정말 말씀처럼 밥보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ㅠㅠ 아마도 떠나는 할머니도 맘이 많이 안 좋으셨을 것 같아요...
    주변에 다른 캣맘님들이 계시다니 다행이긴 한데.. 창문을 바라보는 냥이가 왜케 짠한지... ㅜㅜ

  6. 꽥꽥
    2014.06.19 22:29

    너무 슬퍼여..ㅠㅠ

  7. 한숨..
    2014.10.27 12:00

    영문도 모르고 왜 안 주나 이러고 있었을아이들... 참 마음이 답답해지네요...